관련 글 : 2009/12/04 - 한약 추출법에 대한 어떤 분의 오해
한약 추출법에 대한 의견을 달라는 요청이 있은지 한 달도 더 되었소마는,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서야 한 마디 끄적여 볼까 하오. 현대과학적인 용어는 자제하겠소.
먼저, 한약 추출법이란? 엄격하게는 정의가 좀 다르겠지만, '한약으로부터 약효물질을 끌어내어 복용이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법'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소.
그러므로, 전제조건을 두 가지로 잡을 수 있소. ① 약효물질 함량을 높임. ② 복용/흡수를 용이하게 함.
여기서 말하는 약효물질이라 함은, '의도한' 생리활성을 일으키는 물질 되겠소. 아무런 생리활성이 없다면 당연히 약효물질이 아니고, '의도하지 않은' 생리활성을 일으킨다면 부작용물질이라 할 수 있겠소. 물론 약효물질과 부작용물질은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고, 어떤 목적으로 투약하느냐에 따라서 전환되는 개념 되겠소.
그런데, 이 약효물질이라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수없이 많은 종류가 있소. 수용성/지용성, 산성/염기성을 비롯한 물질특성 또한 천차만별일 것임이 자명한 일이오. 따라서, 물질의 특성에 따라 최적의 추출조건은 제각각이오. 수용성 물질? 물에 끓여. 지용성 물질? 기름에 끓여. 열에 약해? 저온으로 추출. 금속과 반응해? 옹기에 달여. 등등..
그러므로 '가장 좋은 추출법'이란 없음.. 이러면 너무 허무하니까, 조금 더 생각을 해 보쇠다. (플롯 안 정해 놓고 마구 쓰는 거라 이야기가 산으로 갈지도 모르겠소;)
일단은, 무슨 성분이 우리가 원하는 약효물질인지는 잘 모른다고 가정하고. 그렇다면 가능한 한 많은 물질을 끌어내는 게 유리하다고 치고.
예컨대 세포 안에 있는 물질과 세포 밖에 있는 물질이 있소. 세포 밖에 있는 물질이야 용매에 닿으면 녹아나올 수 있겠지만, 세포 안에 있는 물질은 세포막을 파괴해야만 나올 것이오. 따라서, 일차적으로 세포막을 파괴하는 처리를 해야겠소.
식물성 약재의 경우, 껍질(대추 등)이나 질긴 섬유질(감초 등)이 추출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분말로 갈아버리고(이 경우 세포벽도 어느 정도 파괴되므로 더 좋음), 최소한 잘게 자른 뒤에 추출하는 것이 좋소. 옛 문헌에 대추를 쪼개서[劈] 넣으라고 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이오.
세포막을 파괴하는 데는 70% 에탄올이 유용하오. 살균소독용으로 70% 에탄올을 쓰는 이유가 바로 알코올이 세포막을 파괴하기 때문이오. 메탄올이 더 강력하겠지만, 메탄올 자체가 인체에 해로우므로 에탄올을 쓰고, 100%면 더 강력하겠지만, 이 경우 세포막이 파괴되기보다는 위축되므로 70% 농도가 가장 적합하다고 하오.
따라서, 약재를 분말로 하여 70% 에탄올로 처리하면(몇 시간 담가둔다든지) 약효물질(을 비롯한 온갖 성분)이 추출될 최적의 상태가 되겠소. 이제 여기서 70% 에탄올을 제거하고(건조, 감압농축 등) 그냥 먹거나(산/환제), 물을 가하여 추출하면 되겠소(탕제).
실험실용 소형 감압농축기
먼저 산/환제의 경우, 분말 상태의 약재를 그대로 복용하는 것인데, 한 첩 분량을 한 번에 복용하려고 들면 다소 무리요. 약량이 별로 많지 않은 사군자탕의 경우를 예로 들면, 한 첩 분량이 18.75g이오(1돈=3.75g 기준). 가루로 한 주먹은 될 텐데, 이걸 한 입에 털어넣기는..ㄷㄷ
여기에는 약효와 관계없는 물질, 특히 섬유질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비효율적이오. 탕제 끓이고 남은 약찌꺼기의 양을 보면, 약재 중에서 섬유질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소. 따라서 산/환제보다는 탕제가 복용에 효율적임을 알 수 있소.
탕제의 경우, 약효물질이 물 속에 있는 이러저런 이온들과 반응해서 다른 물질로 바뀌면 안 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물은 탈이온수 내지는 최소한 증류수를 씀이 마땅하겠소. 왜 하필 용매로 물을 쓰는가 하면, 어지간한 성분들을 그럭저럭 잘 녹여내면서도 인체에는 무해하기 때문이오. 성분에 따라서는 유기용매에 잘 녹는 것도 많소만, 대부분의 유기용매는 그 자체로 독성이 크므로 지양하는 것이오.
추출용기의 재질은 일반적으로 주방에서 쓰이는 어떠한 재질이라도 무방하겠소. 쇠솥을 쓰지 말라는 기록이 있기도 하오만, 요즘은 옛날처럼 반응성이 있는(녹이 스는) 무쇠 재질은 거의 없고 스테인레스 등 안정한 재질이 쓰이므로, '金克木'이니 하는 소리는 귓등으로 흘려들어도 문제 없겠소.
그럼 그냥 스뎅냄비에 넣고 끓이면 되느냐 하면, 또 이게 간단치만은 않소. 정유 등 휘발성분은 그냥 끓이면 다 날아가 버리므로, 이걸 붙잡기 위해 용기를 밀폐하고 냉각관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오. 그러다 보면 결국은 실험실에서처럼 둥근플라스크에 환류냉각기를 달아서 끓이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소만..
온도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면, 끓이는 경우라면 온도를 어떻게 하든 별로 상관 없소. 기압이 일정하다면, 물은 언제나 100℃에서 끓기 때문이오. 물론 약재가 들어가 혼합물이 됐으니 끓는점이 1~2℃ 정도는 바뀔 수 있겠소만, 불을 센불로 하든 약한불로 하든 끓기만 한다면야 다를 게 없소.
근데, 이거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지는구료.. 아직 절반도 안 왔는데;;
나머지는 좀 이따 이어서 쓰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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